MB의 330억 재산 환원 뉴스를 보면서

MB 가 재산을 환원 한다고 한다. 자신의 공약 중 하나였으므로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330억원

처음 공약으로 이 얘기를 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에이 설마' 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예상대로 대통령이 되어도, 한달이 지나도  여섯달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환원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도 그럼 그렇지 하면서 거의 잊어 먹을 때쯤 되었는데, 이제 환원 한다고 뉴스가 난리다.
늦어진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나눠 줄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 시간이 흘렀을 뿐이라고 한다.

무려 1년이나 그렇게 심사 숙고 해서 내놓은 것이 장학재단을 세워 가난한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한다.
1년 동안 심사 숙고한 것 치고는 넘 평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생각보다, 주위 참모들이 똑똑하지는 않은가 보다.
장학 재단이 MB 의 절친한 친구, 동기, 사위 등으로 이루어 진것을 보면 좀 숙고한 것 같기도 하다.

서민들 장학금...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MB 의 생각이라고 한다.

사실 돈 없으면 공부 하기 힘든 세상이다. 일년에 일억을 버는 부모도 백만원도 못 보는 부모도 다 살기 빠듯하게 만드는게 집과 아이들 교육 아닌가?  그런데 사실 돈 없어서 초, 중, 고를 못다니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 남들 만큼 사교육을 못시키는 것이지, 학교를 못 다니는 것은 아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사교육에 의한 것이지, 공교육 때문은 아니다.
설마 MB 가 학원 가라고, 과외 받으라고 장학금 주진 않을 것 같다. 차라리 현 정권들어 힘껏 힘주고 있는 사교육 시장이나 억제하는게, 없는 자도 공평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란 것을 MB 와 참모들이 모를 것 같진 않다.

330 억..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되나 보다. 
거지던 대통령이던 말이다. 

같은 대통령이라도 누구는 아들 유학비를 대느라  남의 돈이 필요했고, 그리고 그 자존심에 목숨을 끊었다. 그 돈은 330 억의 일년 이자보다도 적다.  본인이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MB 는 330억을 친구와 사위에게 맡기면서 서민을 위한 행동이라고 뉴스를 요란 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서민들이 그를 지지하고 있다. 

슬프다.
 


by baza | 2009/07/07 20:37 | 트랙백 | 덧글(0)

세상은 참 잘 돌아간다.


수원역엘 가서 조문을 하고 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야자를 마치고 온듯한 중학생, 부모님 손에 끌려온  어린이, 그리고 다양한 시민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의 죽음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를 어렵겠지. 
나중에 그들이 그 의미를 알게 될때쯤 세상이 많이 변해있기를 바랄 뿐이다.

노무현이 죽었지만, 세상은  참 잘도 돌아 간다.
사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간다.
회사는 늘 똑 같이 아침 방송으로 우리회사 최고, 다같이 열심히 일잘하자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넌센스로 하루를 시작하라하고, 사람들도 어제 처럼, 저번 주처럼 일상에 파 묻힌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할 정도이다. 

그 강력한 일상에 또 한번 슬픔을 느낀다. 
반복적인 일상만큼이나 견고한 것도 세상엔 없는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의미없는 일상 앞에서는 별무 소용인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왜 죽었냐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죽으면 어쩌냐고, 당신이 상징하는 것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굳게 버텨야지 그렇게 가버리면 어쩌냐고 따지고 싶어도 따질 대상이 없다. 다시 한번 슬플 뿐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일상에 일탈이란 없는 것이다. 
  

by baza | 2009/05/27 23:02 | 트랙백 | 덧글(0)

노무현

참 오랜만에 글을 쓴다.
첨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간 글을 적다가 귀찮음과 바쁨으로 글쓰기를 마다했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는 주제가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것이 참 슬프다.
이런 일로 글을 쓸지 누가 알았을까?

92년 혜화동에서 그의 연설을 들었다. 눈도 오고 발도 무척이나 시린 밤이었다. 노무현은 마지막 연사로 나왔다.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 사람의 말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다.

1945년 해방 , 이승만 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부 독재, 김영삼 김대중 지역 정치. 그리고 노무현 이었다.
치열한 투쟁의 80년대와  게으른 낭만의 90년대를 거쳐 20년을 싸워서 얻은 것이 노무현의 5년 이었다. 
이 땅에선 고작 5년을 얻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몇년이 더 지나야  다시 5년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죽은 자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지 모르나, 그가 죽은 이유와 분노는 쉽게 잊혀지는 법이다. 일상은 언제나 일상 속으로 우리를 매몰시킨다.

인간 노무현,대통령 노무현, 봉하마을 노무현. 
사실 노무현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를 지지해준 군대도 없었고, 경상도든 전라도든 지역도 없었다.  
그리고 담배 한 가치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자신을 끝내 버렸다.

학연, 지연, 든든한 가족,,
노무현은, 이 땅에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바르게 산다는 것이, 그것도 감히 진보로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부디 편히 쉬기를.

by baza | 2009/05/25 00:54 | 트랙백 | 덧글(0)

용산 철거 진압 사건 관련

용산 철거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 이 죽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어수선한 요즘이고, 개인적으로도 한참 심란한 요즘이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했었나 보다. 용산에서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막상 6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왠지 모를 무덤덤함이 느껴졌을 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기사를 접하면서,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구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동료중 한명은

"시위로 사람이 죽은 건 옛날 그 왜,,이한열 인가 이후 처음 아냐?"

라고 했다. 물론 잘못된 사실이다. 비교적 최근엔 FTA 시위 관련 농민이 두명 사망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2005 년 이었으니 동료가 그렇게 말한게 무리는 아닌 듯 하다. 특히 사회나 운동에 별반 관심없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몇몇 기사를 읽어보면, 농성을 시작 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듯 한데, 용산 경찰서에선 특공대 까지 동원하여 강제로 진압을 시도 한것 으로 보인다. 무슨 일이든 무리하면 화를 부르는 법 결국엔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놀라운건 그 와중에도 끝까지 진압을 마쳤다는 것이다. 경찰서의 뚝심에 그저 놀랄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건에 대한 경찰청장과 여당의 반응이다.
여당의 부대변인은 이번 진압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오늘 쯤 기자 회견을 하고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생각됐던 경찰청장은 별로 잘 못 한 것이 없다는 태도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이 그리도 당당한가?이번 진압을 최종 승인한 그다.

현정권 들어서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가장 많이 변했다고 느끼는 것은 진압에 대한 경찰의 태도이다. 광우병 촛불 시위때나 이번 용산 철거 때나, 경찰은 좀 오버다 싶을 정도로 강경 진압을 펼치고 있다.  현 정부에 과잉 충성하는 듯한 모습을 모이고 있으다. 마치 지난 정권때 가슴에 쌓아 두었던 충성심을 이제야 펼치는 듯 하다. 정부 역시 오버스럽다는 주위 여론에도 불구하고, 싫다는 기색이 없다.

과잉 충성은 보스를 진정으로 존경하거나, 그래서 이 한몸 보스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라는 마음이 우러러 나올 때나,  충성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을 때 나올 것이다. 이전 정권때는 없던 경찰의 과잉 충성의 원인이 둘 중 무엇 때문인지 알 길은 없으나, 국민의 지팡이가 몽둥이를 자처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by baza | 2009/01/22 02:05 | 정치 | 트랙백 | 덧글(0)

벼랑위의 포뇨를 보다

회사가 어려운 덕에 연말 연시 긴 휴가를 보냈다. 
어려울 수록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배웠으나, 실상 회사는 어려워 지면 직원들을 쉬게 만드는 법이다.  어려운 상황은 개인도 마찬가지라, 긴 연휴기간 마땅히 어디 가기도 부담스러워, 영화를 몇 편 봤다.

하지만 아이랑 같이 봐야 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이 따를 수 밖에 없어서 본 것이 벼랑위의 포뇨와 디즈니 볼트이다.
벼랑위의 포뇨는 소위 일본내 고정 관객이 천만이라는 미야자키 하야호의 가장 최근작이라 많은 기대를 걸었다.

대학교 때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접한 이후로 토토로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르기까지 구할 수 있는 그의 모든 작품을 봐 왔다. 그간 세상도 많이 변했다. 대학교 때는 일본 문화 수입이 금지 되었던 터라 주로 학교 축제 기간이나 동아리 행사기간  강의실에서나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고, 대학원때는 발달한 인터넷과 매니아들의 투철한 공유 정신 덕에 주로 실험실이나 기숙사의 컴퓨터에서 그의 작품들을 봐 왔다.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고 카드로 표를 끊고 멀티 플렉스관에 편히 않아서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느 시대가 되어 버렸다. 

 그의 작품은 대개 어린이가 주인공일 경우가 많다. 그의 데뷰작인 코난이 그렇고, 토토로, 나후시카, 센과 치히로의 모험이 그렇다. 포뇨도 그답게 어린 다섯살 짜리 소스케가 주인공이고, 그를 좋아하게 된 물고기도 대략 그 정도의 나이인 듯 하다. 아마 이제껏 그의 영화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주인공이 아닐까 한다.  

뭐랄까, 보면서 내가 너무 나이를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이 예전만큼 재밌거나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간단한 스토리, 그리고 결말 또한 너무 싱거웠다. 주인공 나이 만큼이나 영화가 유치해져 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 영화 (많은 디즈니 영화)에 대해 스토리가 유치하다니, 너무 진부하다는 등의 평을 참으로 싫어한다. 뽀뽀뽀를 보면서 너무 유치하다고 비평해서는 안 돼는 것이다. 아이들 옷은 왜이리 작게 만드냐 어른들이 입을 수가 없자나와 마찬가지로 어처구니 없는 소리이다. 하지만, 그간 미야자키가 보여준 저력들에 비춰 보면 이번 작품은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그의 많은 영화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성격이 강했다. 월령공주의 경우 아예 어린이들을 배제해 버렸다.  하지만 포뇨의 경우는 미야자키가 어른들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3D 에니 메이션의 반짝이는 질감에 익숙한 우리에게 고집스런 2D 는 오히려 낯 설었다. 변한 것은 그의 작품을 보는 장소와 방법 뿐만은 아닌가 보다.  

by baza | 2009/01/11 00:26 | 문화-TV, 영화,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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